누구든지 사랑하면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시선이 고정되는 법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도 시선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삶이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내 눈으로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도무지 하나님에 대한 시선을 지니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훈련이라 하는, 말씀읽고,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들은, 모두 그 시선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첫 번째 방문하여 40일 동안 머무신 곳은 유대광야입니다. 유대 광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에, 그곳에서는 오직 하나님만 보이고, 또 하나님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 보이는 그 유대광야에서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예수님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고정된 시선으로 사탄의 달콤한 유혹을 일거에 물리치셨습니다. 이렇게 광야에서 하나님께 고정된 시선으로 사탄의 유혹을 모두 물리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시선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인들의 기도시간에 맞추어 성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가장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미문을 통과하려 할 때였습니다. 그 미문 앞에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걸인 한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앉은뱅이 걸인이 보았고, 베드로와 요한도 앉은뱅이 걸인을 보았습니다. 이들이 온 신경을 집중하여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때, 그 순간,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라고 명하자, 걸인 역시 베드로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베드로가 내민 손을 의지하여 마침내 일어섰습니다. 성전 미문 앞에서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손과 시선이 그런 능력을 만들었을까요? 아닙니다. 앉은뱅이 걸인의 시선이 집중한 것은 베드로를 통하여 먼저 자신을 응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따라서, 앉은뱅이의 시선과 불꽃을 튀기듯 맞부딪친 것은, 베드로 속에서 역사하는 예수님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사랑과 생명의 시선을 굳게 붙잡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의지하여 자기 발로 일어섰습니다. 이 기적의 역사는 그가 눈을 들어 예수님을 향해 자신의 시선을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동안 고정했던, 이 세상을 의지하던 눈을 버리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순간부터, 우리 인생은 하나님에 의해 아름다운 미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주님의 선행된 시선에, 인간의 시선으로 응답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응답하는 시선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이 맞부딪치는 곳에, 하나님에 의한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의 시선과 마주쳐야 합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미문은 옆의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만 열려집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시선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향해 두 눈으로 응시하고 계십니다. 혹, 여러분들은, 지금 성전 미문 앞에 걸인처럼, ‘동전 한 닢’에, 또는 ‘금과 은’에 시선을 고정하고, 영적 앉은뱅이, 영적 걸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미 우리 가운데 오시어, 우리를 응시하고 계시는 주님을 향해 우리 모두 눈을 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의 시선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십시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 안에서 일어나, 우리 앞에 활짝 열어 두신 생명의 미문, 진리의 미문으로 다 함께 들어갑시다. 참된 생명도, 참된 사랑도, 참된 능력도, 참된 소망도, 참된 위로도, 인생의 참된 해답도, 오직 우리 주님께만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은혜와 이로인해 인생의 아름다운 미문을 통과하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맞추시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