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천천히 옵니다. 아이가 자라나는 것이 눈에 보이나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 자녀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들이 자라기 위해서 어떤 큰 도약의 시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교회를 다녔고, 예배 시간 때에 장난치거나 졸기도 했는데, 그 시간들이 쌓이니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그 시간의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점이 모여서 선이 되고 선이 모여서 면이 됩니다. 변화는 작은 점들이 세월 속에 축적되면서 선과 면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래전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이야기를 우리는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것과 가는 것은 단지 생존 방식의 차이입니다. 날지 못하고 기어가는 애벌레의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의미 없어 보이는 그 기어감이 있기에 날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날지 못한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힘들어하지 마세요.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나비를 부러워하지 마세요. 생존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날개 짓하며 날아가는 나비에 비하면 나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보이지만, 묵묵히 한발 한발 내디디면 되는 것입니다.
룻기서 1장을 통해, 나오미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그 불행의 시작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 잘못된 선택이란 하나님이 아닌 자기 생각대로 먼저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2장~4장은 나오미의 회복을 보여줍니다. 회복은 어떻게 오나요? 그것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작은 변화가 무엇인가요?
나오미가 모압을 떠나고자 했을 때 룻은 오르바처럼 시어머니를 떠나 새로운 인생을 꾸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룻에게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남고자 하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나오미의 곁에 남기로 했습니다. 원래 모압 사람은 이스라엘의 회중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신명기 23장 3절을 보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모압 여인 룻은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라고 함으로써 자신이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 속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룻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룻에게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의 삶입니다. 삶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11절을 말씀은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입니다. 그녀에게 기회가 온 것은, 그녀의 삶이었습니다. 룻이 무엇인가를 의식하고 행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늘 했어야만 했던 그 일을 담담히 해낸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담담함이 누군가에게는 감동된 것입니다. 룻은 소소한 일상을 감동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러한 룻의 모습은 주변 사람에게 감동이 되었고, 보아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룻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성실함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일상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고 실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작고 소소한 것들을 감동으로 바꾸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