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왜 하나님의 백성이 망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사건을 열왕기에 포함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단지 나아만이 나병을 치료받았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록했을까요? 본문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열왕기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이 사건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이야기에서 큰 것과 작은 것의 대비는 본문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중요한 해석학적 열쇠로 작용합니다.
본문에서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1절에서 큰 용사였던 그러나 나병환자였던 나아만을 소개한 이후 바로 이어서 어린 소녀를 등장시킵니다. 2절의 어린 소녀는 1절의 크고 존귀한 자와 대비가 됩니다. 다음으로는 요단강과 다메식의 아바나와 바르발입니다. ‘아바나’강은 헤르몬 산 북동쪽에서 발원하여 다마스커스를 지나가는 큰 강입니다. 바르발 강 역시 큰 강이었습니다. 아바나와 바르발은 요단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량이 많고 큰 강이었습니다.
더 결정적인 비교는 14절에 나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어른 나아만의 살은 요단강에 들어가 7번 씻고 나니 어린아이 살처럼 회복되었습니다. 여기서도 크고 작은 대비가 나옵니다. 오늘 읽지 않았지만 15절에서 크고 존귀한 나아만은 자신을 종이라고 칭합니다.
이제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열왕기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봅시다. 열왕기의 관심은 “왜 하나님의 백성이 망했을까?”였습니다. 나아만 장군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 요인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제사장 나라라고 거룩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에서의 삶은 크고 화려한 것을 기대했던 그들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마치 나아만과 같이 극적이고 거창한 변화를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실망한 나아만처럼, 이스라엘도 그들의 기대와 다른 가나안의 삶에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나아만이 기대한 것과 같은 같이 크고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겨자씨와 같습니다. 요단강에 들어가 몸을 씻는 것같이 하찮게 보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열왕기는 신명기적 사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신명기적 사관이란 언약에 대한 신실함입니다. 신실함을 회복합시다. 작게 보여도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으로 나갑시다. 이것이 승리의 입니다. 신명기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8:3)입니다. 기적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꿈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의 일상이 중요합니다.
일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영적인 루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점이 모여서 선이 되고, 선이 모여서 면이 되듯이 우리의 삶이 바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하루하루 쌓여가면 메마른 땅이 옥토가 되는 것처럼, 사막에 강이 흐르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그날을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작은 것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
하는 3월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