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신약성경의 중심 메시지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부활 신앙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하지만 적어도 1세기에 살았던 유대인들, 유대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소식은 아주 낯선 개념이었기에, 그들이 날조했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많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부활하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은 장차 세상 끝에 일어날 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여인들도 놀라고 글로바라고 하는 제자와 다른 제자가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내려갔고, 심지어 도마조차도 제자들이 다 주님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 창 자국과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들을 신약성경의 증언을 토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복음서는 빈 무덤을 발견한 주인공들을 여성으로 묘사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것이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1세기 당시 유대 문화라는 컨텍스트에서 보자면 이러한 진술은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당시 유대는 다른 고대 사회와 마찬가지로 가부장적 사회였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여성들의 증언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꾸며낸 이야기라면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낫습니다.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과 같이 유력한 사람을 증인으로 삼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부활을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하여 남성들이라고 수정을 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빈 무덤을 처음 본 사람들은 여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는 한결같이 부활절 당일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 시체를 옮겼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로마 군인들이 예수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예수의 시체를 옮겼다면 로마 군병들의 감시를 피했어야 하는데, 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대로 겁에 질린 제자들이 그러한 모험을 했을 가능성이 드문 것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옮겼다면, 그 조작된 이야기를 위해서 제자들이 목숨을 내어놓았다는 것인데 그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빈 무덤과 아울러 중요한 점은 예수의 죽음 이후에, 그리고 지금까지 예수의 제자들과 교회가 예수의 무덤을 기념한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덤 숭배 관습은 신약성경 시대에 흔히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선지자들이나 의롭게 죽은 사람들의 무덤을 기리고 있었습니다. 신약성경과 초대교회 문서에는 예수의 무덤을 숭배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예수의 무덤에 시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부활이 종말에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미래의 부활을 믿었으며 모든 사람이 생전의 행실을 따라 사후에 보상을 받거나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사두개인들과 같은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당시에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며칠 전만 해도 베드로의 경우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고, 제자들조차 유대인의 보복이 두려워서 뿔뿔이 흩어졌었는데, 불과 며칠 만에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제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로 인해 신체적인 위협뿐만 아니라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제자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게 하였을까요? 만약 지어낸 이야기라면 그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것 이외에는 이들의 변화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죽어버린 스승, 과거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살아있는 실체로서 그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부활의 예수님과 언제나 동행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