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특성들이 가장 잘 묻어나는 곳은 가정과 교회이다. 가정과 교회는 우리가 경험하는 다른 이차적인 관계집단과 달리 이해관계가 작용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공동체는 이해관계의 원리에 의해서 움직인다.
가정은 성취의 욕구가 아닌 연결의 욕구가 작용하는 곳이다. 부모가 자녀보다 강하지만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내어준다. 자녀가 자신보다 건강해도 자녀의 건강을 염려하고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더 형편이 좋아도 자식을 걱정한다. 가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서로를 내어주는 가치를 배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초대교회가 헬라인이나 이방인 그리고 유대인 사이에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차별이 없는 모습을 유지하고자 한 것도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이러한 속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서로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서로를 짓밟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곳이다.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의 유여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케 하려함이라” (고후8:14) 사람마다 잘나고 또 부족한 부분이 있다. 나의 잘난 부분이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그리고 상대방의 잘 난 부분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세상은 제자가 스승을 발을 씻겨주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겨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원리를 발견한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 위하여 자기를 비우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도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를 비워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철저하게 부족한 자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자기 비움’으로 일관되었다.
예수님의 오심은 죄인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함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자기 비움의 절정이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모두가 하나의 가정이 되는 공동체이다. 모두가 하나의 가정이 되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서로로 인하여 성장해가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이곳에서 서로를 채워 주는 훈련을 하자. 그리고 우리 모두 가정이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보자.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의 성도”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