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모두 코끝에 호흡이 멈추면 죽어버리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한한 우리의 관심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서도 언제나 생로병사와 관련한 문제해결과 우리 소원성취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문제를 해결해도, 소원성취가 된다 해도 결국 우리의 코끝의 호흡에 죽음이 달려 있다는 사실과 우리의 삶이 화장장이나 묘지에서 끝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관심사를 바꿔야 합니다. 그것은, 심판주가 누구인가?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죽음의 날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 모두는 심판주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의 심판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설교를 매듭지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 날 만물을 회복하실 심판주로 밝혔습니다. 20절-21절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는 본문의 의미는, ‘만물을 회복하실 때’ 바로 그 종말의 날, 심판의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주로 재림케 하실 것’ 이란 의미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러 오시리라’ 는 심판주에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심판에는 두 가지 심판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와 아닌 자에 대한 심판을 통해 만물을 회복하시는 데, 심판의 모양은 같지만 그 심판의 의미는 다릅니다. 소위 믿지 않는 자가 마지막에 받는 심판의 내용은 멸망의 심판입니다.
23절 “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반면에, 예수님의 말을 듣고 믿는 자에게 심판의 내용은 하나님의 상급의 심판입니다. 즉,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상급입니다. 계시록22:12절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이렇게 심판의 모양은 같으나, 심판의 내용이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공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삶의 결과에 따라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고, 뿌린 만큼 거두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이고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만약에 삶의 결과에 평등하게 대하신다면, 바울과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다해 헌신하여 참수형을 당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히는 순교까지 당한 사람과 대충대충 신앙생활한 사람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순교의 헌신자들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을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구태여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순교하기 까지 헌신한 바울과 베드로에게는, 2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뭇사람들로부터 존귀함의 면류관과 하늘에서는 영생의 면류관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처럼 믿는 자에게, 헌신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은 상급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이제는 악함을 버리고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실 날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26절 “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육신의 호흡을 언제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막상 호흡의 멈춤이 찾아왔는데, 하나님의 상급에서 제외된다면, 그때의 황당함과 당혹스러움을 그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더 늦기 전에,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악함에서 돌이키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심판과 상급을 사모하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의 심판과 상급을 사모하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성도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