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웁니다. 이후 수많은 사람이 두 사도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때, 유대지도자들이 나타나 두 사도를 붙잡았습니다. 두 사도는 산헤드린 범정에서 심문과 진술과 정회, 그리고 유대교 최고 지도자들의 두 번에 걸친 협박을 받고서야 풀려났습니다. 두 사도는 동료들에게 가서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소상하게 전합니다(23절). 이어 동료들, 사도들과 초대교인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24절) 이들이 기도한 이유는 기도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이 인식한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대주재이십니다.. “…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24절 하반절). 대주재란 ‘소유자’, ‘절대 통치자’란 뜻입니다. 당시는 로마 황제에게 ‘대주재’라고 칭할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사도와 초대교인들이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주재’(소유자, 절대 통치자)가 되신다라고 선포한 것은 대단히 놀라운 고백입니다.
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대주재로 믿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것으로부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은 역사 속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계시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25절~26절은 다윗이 지은 시편 2편 1~2절의 인용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1천 년 전에 다윗의 입을 통하여,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함께 야합하여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할 것을 이미 계시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과 초대 교인들에게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자신을 계시하시는 “계시자”이십니다.
3) 하나님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자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시는 “섭리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28절) 이 말씀은, 갈릴리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와 유대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가 세상 사람들과 합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능과 뜻을 따라 이루려고 예정하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는 섭리였습니다. 즉, 하나님만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인 동시에, ‘계시자’이시고, ‘섭리자’이심으로 “대주재”가 되십니다.
욥기 38장에 보면, 욥도 시련을 겪고 하나님에 대한 부족한 인식과 믿음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시련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창조자인 동시에, 계시자이시며, 섭리자이신 대주재 하나님이시라는 진리입니다. 대주재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속에서, 욥은 처음보다 더욱 의롭고 존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주재”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성경과 역사를 통해 계시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생각이 빚어낸 “자칭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믿고, 섬기느라, 정작 하나님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하나님께서 대주재이심을 믿지는 못해, 막상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좇지도 못한 채,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천하 만물을 소유하시고 절대적으로 주관하시는 대주재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에 의해서만, 오늘 본문 속의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처럼, 위협과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대주재이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되어 우리 삶 속에 주님이 함께 계심을 확인하는 감동과 감격을 경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