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의 일상이 삶의 변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룻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을 줍는 일은 빌어먹는 일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담담하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회복의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1. 룻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룻기를 이해하는데 2절은 없어도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1절 다음에 바로 3절로 들어가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룻기서 기자는 2절을 그 중간에 집어넣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나오미와 룻의 태도를 비교하기 위함입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을 떠날 때, 아들을 결혼시킬 때, 그리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룻의 태도는 나오미와 비교되는 것이었습니다.
변화의 시작은 묻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룻이 어머니에게 말한 것이지 하나님에게 기도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글의 흐름을 보면 그러한 룻의 태도는 하나님에게 묻지 않았던 그 시대 사람들과 그리고 시어머니 나오미와 묘하게 대조가 됩니다. 열왕기, 역대기를 보면 하나님에게 묻지 않고 무엇인가를 결행했던 왕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사기에서처럼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룻이 은혜를 받았던 요인이었고 우리가 룻에게서 배워야 할 올바른 삶의 자세입니다.
2. 룻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간 일을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일상에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실 것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부끄러운 일에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초라해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기름을 부어 주시면, 사람에게 감동이 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의 영성이란 바로 무미건조한 내 삶에 내가 활력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3. 룻은 기대에 뒤따르는 행동을 했습니다
룻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 것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기대하였지만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이 한 걸음이 너무 소중합니다. 그 한 걸음이 룻의 삶을 바꾼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했습니다. 자신에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능동이 아닌 수동이었습니다.
하지만 피동적 수동이 아닌 창조적 수동이었습니다. 은혜를 기대함과 동시에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창조적 수동성이 있어야 합니다. 룻은 은혜를 기대함과 동시에 자신이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일상이 은혜가 되기 위해서는, 일상이 일상이 아닌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내 일상에 하나를 더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